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 지휘참모대학교 (문단 편집) == [[프룬제 군사대학 쿠데타 모의 사건]] == [[1991년]]에 이 프룬제 출신 북한 장교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을 사열식에서 [[장포스|땅크로 날려버리]]려 시도했다는 썰이 있다. 해외유학경험을 통해서 [[국제정세]]를 잘 알고 있던 프룬제 출신 엘리트 장교그룹[* 당시 소련으로 해외유학을 간 군 [[간부]]들은 그야말로 혁명 유가족으로 취급받는 부류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장 주모자 그룹을 보더라도 [[최룡해]]의 [[매부]]라든지 김일성의 외가친척이 있기도 했었다.]이 구 [[소련]]과 [[중국]],[[동구권]]의 개혁개방을 보고서 우리도 변해야 한다면서 [[쿠데타]]를 시도했다는데, 이후 이 사건을 빌미로 일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든 프룬제 출신자들이 대규모로 [[숙청]]되기도 했다. 그리고 김정일은 해당 프룬제 관련자들을 대한 대대적인 숙청 이후 김일성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군 인사권까지 거머쥐는 동시에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올라서 명실상부한 1인자가 되었다. 다만 이 쿠데타썰 자체가 김정일이 군을 장악하기 위해서 과대포장, 조작한 것이란 썰도 있었다. 그러나 전 로동당 간부 김일철(가명)이 탈북하면서 그동안 한국 내에서 소문만 무성하던 프룬제파 장교들의 쿠데타가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http://news.donga.com/View?gid=73497814&date=20150908/111515| 북한 쿠데타 모의 ‘프룬제 사건’ 실체 최초공개]] 해당 쿠데타의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북한 내에 제 2의 소련파를 육성하기 위하여 소련에 있는 이들을 포섭하기 위하여 [[KGB]]의 공작과[* 이들에게 KGB 소속의 [[백인]] 미녀들과 [[술]]을 연일 제공하며 구슬렀다고 한다.] 김일성이 내준 [[장학금]][* 앞서 말했듯 이들은 북한에서는 엘리트 집안 사람들이고 이들에 대한 김일성의 관심이 남달라서 지원 수준이 꽤 좋았다고 한다.]과 유학생들의 장사로 인해 소련에서 유복한 삶을 살던 엘리트 유학파 장교들은, 북한에 돌아와 매우 열악한 처우를 받게 되었고, 이에 불만을 품어 1950~60년대 소련에서 유학했던 1세대 유학생들 및 같은 유학생들끼리 똘똘 뭉쳐 러시아말로 대화하는 등 [[이너 서클]]을 구성했다. 그리고 [[1991년]]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최고사령관]] 직을 물려주자 이에 크게 반발한 이들은, [[1993년]] 김정일을 제거하고 김일성을 [[일본]]의 [[천황]]과 같은 [[국가]]의 [[상징]]으로 내세운 다음에 [[주체사상]]으로 왜곡된 북한의 사회주의 노선을 정통 [[사회주의]]로 개조한 후 남한을 침공할 계획이었다 한다. 물론 고난의 행군이 있었던 90년대 북한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북한은 제대로 전쟁 수행조차 못하고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소련이 붕괴되면서 KGB 간부들이 북한에 이들 친소파 장교들의 정보를 넘겨버리면서 김정일이 이들의 이너서클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보위부]]에게 [[수사]]를 [[명령]]하여 쿠데타 전모를 밝혀내기에 이른다. 쿠데타 거사일을 뒤로 미룬 상태였던 이들 친소파 장교들은 [[1993년]] 기습적인 체포작전으로 줄줄이 끌려갔고, 200명의 유학파 장교들이 총살되었다. 한때 군의 40%를 장악하였던 소련 유학파 장교세력은 삽시간에 일소되었다. 이후 북한은 단 한번도 해외에 군사 유학생을 보내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